압축된 현실

나의 작업은 사진을 통해 일상의 오브제에 지나지 않았던 사물을 특정한 지시적 의미를 지닌 대상으로 승화시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나는 일상의 오브제를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던 기존의 회화, 설치미술의 표현방식에 주목을 하고 사진 스튜디오라는 특수한 공간 안에 구현하기 위한 실험을 지속해왔다.

회화의 화면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환영, 설치미술 속 오브제가 공간과 맺고 있는 관계, 이 모든 것을 사진 스튜디오라는 공간에서 촬영되는 한 장의 사진 속에 압축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객관적으로 인식되었던 평범한 오브제는 설치, 회화, 사진의 매체 속에서 공통된 표현의 대상이 되면서 작가의 주관이 담긴 상징적 표현의 대상이 된다.

그 결과로 일상의 오브제는 사진속에서 지시적 기능을 지닌 특정 대상으로 변화하고, 사진의 객관적 정보전달이라는 가장 기본 적인 기능을 환영의 문제를 다루는 회화, 공간의 문제를 다루는 설치미술과 같은 다른 매체를 활용하여 구현해봄으로써, 서로 다른 매체가 대상을 표상 해내는 과정, 그리고 그 차이점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드러내보고자 한다.

Compressed Reality

My work starts with sublimating from a mere common object in dairy life to an entity having a particular denotative meaning.

For this, I have paid attention to existing expression methods of painting and installation art that take a dairy life object as a target of expression, and have continued experimentations to realise the methods in a particular space of a photographic studio.

The illusion of space created by the painting,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an object and space, all these are compressed into a photography taken in a photo studio, for the sake of expression.

Also, it presents in a photo the process of representing an object by different media and the differences between them.

As the result of this, a common object perceived objectively becomes an entity of expression shared in media such as installation art, painting, and photography at the same time an entity of symbolic expression containing the artist's subjective view.

Invisible
이 작업은 여러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종교나 미신 같은 불확실하지만 확고한 믿음에서부터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신념과 믿음, 바램으로부터 시작된 여러 생각들과 , 눈앞에 존재한다고 믿지만 보이지 않는 어떠한 존재들, 실제로 존재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인식하게 되는 우리의 의식을 확인해보기 위해 오브제를 설치하여 촬영을 진행하였다.


Face and faces

1. Face: 앞

원서용의 사진, 설치에서 이미지는 정면을 향한다. 그의 작업에서 관건은 렌즈/눈을 올곧게 대하는 ‘정면의(frontal)’ 이미지다. 2011년 이래 그의 사진 연작과 설치 작업들은 하나의 오브제를 렌즈 앞에 세우고, 배경, 공간, 조명 등의 여러 층위의 물리적 상태를 하나의 정면으로 압축하여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정면’의 어법은 평면과 입체를 아울러 관통한다.
그런데 지금의 ‘정면’은 일종의 역설을 포함한다. 피사체는 일상적 사물에서 신화적 인물을 형상화한 석고상으로 변했다. 이전의 연작과 달리, 비춰 사물의 구체적인 부분들은 강렬한 조명을 사용하여 하얗게 지워졌다. 사진의 주제가 구체성을 잃었으며, 우리가 아는 그 석고상은 얼굴의 디테일이 다 사라져버린 채 어떤 호명을 기다리게 되었다.
여전히 이미지는 단일한 시선, 정면을 향해 구조화된다. 그러나 이제 정면은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여주지 않기 위해, 혹은 숨기기 위해 의도된다. 윤곽만 남은 하얀색 인체 형상은 ‘텅 빈 정면’이라는 역설적 이미지를 낳는다. 작품이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이미지인 ‘정면’이, 보여주지만 보여주지 않는 무엇을 이면, 배면, 접면에 찾으려는 욕망을 건드린다.

2. faces: 둘레, 혹은 뒤, 혹은 아래

사진은 무언가를 증명하기 마련이라는 오래된 믿음은 어느 정도 사실을 공유한다. 사진이란 ‘있(었)던’ 무엇과 최소한의 물리적 접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사진이 작동하는 과정에는 증명을 불가하게 만드는 요소도 포함된다. 사후편집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미 렌즈가 가용되는 범위 안에서, 프레임이라는 것이 ‘있(었)던’ 존재를 잘라내고, 확대하며, 왜곡한다. 또, 조명은 ‘있(었)던’ 무엇의 가시적 형상을 지우기도 비현실적으로 획득하게도 하면서 존재 증명의 책무로부터 사진을 자유롭게 한다.
원서용이 신작에서 석고상을 주제 삼은 것은 위와 같은 사진적 맥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에게 이미지는 실체와 존재를 가시화하는 문제에 결부되어 있는 듯하다. 가령, 신화의 가상적 주인공들이 구체적인 사람의 얼굴로 형상화되는 일은 작가에게 근본적인 난제이다. 그는 가장 허구적인 이미지가 역으로 실질적인 믿음을 보장하는 과정과, 실제적이라 여겨지는 사진 이미지가 증명을 거부하고 가상으로 남는 과정을 겹쳐 놓는다. 사진의 증명이 무화되는 지점을 드러내는 사진, 눈 앞에 놓인 물리적 실체가 가상적 잔상을 남기는 입체가 그러한 탐구의 결과다.
전시는 실체 없는 존재의 얼굴들을 정면으로 배치한 사진과 입체를 선보인다. 그리고 ‘정면’은 으레 보일 것이라 여겨지는 구체적인 얼굴 대신, 흔적으로 남은 음영, 짓뭉개진 자욱 뒤편을 돌아서 보기를 권유한다. 이로부터 얼굴들은 에둘러, 혹은 뒤로 옆으로 형성되는 이미지의 운동 속에서 거의 사라지면서 동시에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글 허호정